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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끝나지 않은 전술의 전쟁

축구에 있어 '전술(tactic)'이 내포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우선 전술은 크게 보아 개인전술, 부분전술, 팀 전술로 대변될 수 있으며,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기 상황에 따른 감독의 판단 일반 - 예를 들어 선수 교체, 포메이션 변화 등등 - 은 물론, 감독들의 심리적 차원의 전술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옛 시대에 비해 국가 혹은 클럽들의 상대적 전력 평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 전술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증대하는 경향을 띤다. 물론 승부에 있어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증가한다. 기본적 전력이 비슷할수록 미세한 차이로부터 승패가 갈릴 공산이 커지는 까닭이다.

이른바 '포메이션'의 태동이 19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흑백 TV 화면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까지는 전술과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웅들의 존재가 무엇보다 우선시될 수 있었다.
 
스탠리 매튜스(잉글랜드)로부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아르헨티나/콜롬비아/스페인), 페렌치 푸스카스(헝가리/스페인), 그리고 펠레(브라질)와 에우제비우(포르투칼), 조지 베스트(북아일랜드)에 이르는 '수퍼맨'들이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이들을 보유한 팀들에게 있어, 어쩌면 전술은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도 전술적 센스에 민감한 이탈리아를 필두로, 합리적 계산의 명수 독일과 창의적 전술의 대명사 네덜란드가 전술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일깨우기 시작한다.

'카테나치오(catenaccio)', '리베로(libero)', 그리고 카테나치오와는 상반되는 모티브를 지닌 '토탈 풋볼(total football)' 등의 전술적 개념이 설득력과 인기를 얻었으며, 엘레니오 에레라(아르헨티나 출신 인터밀란 감독),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요한 크라이프(네덜란드)는 각각의 전술의 표상처럼 일컬어졌다.


종가의 부활과 4-4-2
선택받은 수퍼맨들의 개인 전술이 여전히 돋보이는 시대였기는 하지만, 1966 FIFA World Cup England™에서 '잠자던 종가' 잉글랜드가 마침내 정상에 등극한 데에는 전술의 덕이 나름 컸다.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변형 버전들이 존재하기는 하더라도, 단순하게 말해 '가장 장수하는 포메이션' 4-4-2가 효력 발휘를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였다.

미드필드 구성에 핵심을 둔 4-4-2 포메이션

미드필드 구성에 핵심을 둔 4-4-2 포메이션

잉글랜드 감독 알프 램지의 고전적 4-4-2의 핵심은 미드필드 구성에 있었다. 램지의 미드필드에서 가장 주목받을만한 인물은 전성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 노비 스타일스, 강인한 투쟁심이 크게 돋보였던 스타일스는 오늘날의 소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포워드에 가까운 공격형 미드필더 보비 찰튼과 더불어 중원을 형성, 잉글랜드 우승에 큰 몫을 했다. 또한 램지는 그 때까지의 일반적 개념 몇 가지를 파괴했다.
 
우선 전통적 스타일의 센터포워드를 지양하고 운동성이 좋은 두 명의 포워드를 배치했다. 또한 양 측면 미드필드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알란 볼과 마틴 피터스는 고전적 개념의 윙이 아니라 부단한 운동량을 통해 수비와 공격 모두에 도움을 주는 스타일의 선수들이었다. 전반적 견지에서 램지의 '윙 없는 노동자(hard-worker) 스타일 4-4-2'는 대성공으로 귀결됐고 한동안 유행을 탔다.


리베로 vs. 토탈 풋볼
1974 FIFA World Cup Germany™ 결승전에서 세련된 전술로 맞붙은 독일과 네덜란드
1974 FIFA World Cup Germany™ 결승전에서 세련된 전술로 맞붙은 독일과 네덜란드

적어도 필자가 판단하기에. FIFA World Cup™의 역사에서 세련된 의미에서의 '전술'과 '전술'이 맞부딪힌 기념비적 한 판은 바로 1974 FIFA World Cup Germany™결승전이다. 결승에 오른 서독과 네덜란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한 명의 특출한 선수의 능력'을 기반으로 효율적인 '팀 전술'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는 독일인들에 의해 '리베로' 시스템으로 확장, 발전했다. 네 명의 대인방어 수비수 이외에 또 한 명의 '스위퍼'를 배치시킨 카테나치오가 근본적으로 극도의 수비지향적 전술인 것에 반해, 베켄바워로 대변되는 서독의 리베로 시스템은 '수비만을 위한 스위퍼'의 개념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했다.

리베로는 글자그대로(이탈리어어로 'free'의 뜻) 폭넓은 자유를 누리는 스위퍼를 의미한다. 넓은 시야, 경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 공격 전개 능력을 갖춘 이러한 유형의 스위퍼는 공격의 시발점 역할은 물론, 상황에 따라 직접 공격 진영으로 뛰어든다.


자유분방한 발상의 네덜란드는 요한 크라이프라는 '그라운드 내 사령관'의 지휘에 힘입어 축구사전체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전술적 완성에 다다랐다. 물론 이른바 '토탈 풋볼'은 당대 네덜란드와 아약스에 의해서만 구사되었던 전술은 아니며, 넓은 의미에서는 베켄바워의 서독, 그리고 잉글랜드의 일부 클럽들 또한 토탈 풋볼의 범주 내에 위치시킬 수 있다.
 
하지만 크라이프의 네덜란드가 이 전술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한 모델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라운드 전체를 누비는 사령관 - 더 옛날의 디 스테파노를 연상케하는 - 크라이프의 무브먼트는 동료들을 '자리바꿈'과 '공간 메우기'에 익숙해지게끔 만든 원동력이다.


토탈 풋볼은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물 흐르듯 흐르는 매력적인 축구를 지향한다. 수비수들도 공격을 하고 공격수들도 수비를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유기체 안에서 '혼돈'이 발생해선 안된다. 그만큼 이 전술을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팀을 구성하는 모든 선수들의 지능과 운동량, 테크닉이 요구된다. '공간'과 '위치 선정(positioning)'에 관한 센스가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팀 전체의 메카니즘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따라서, 베켄바워와 크라잍프의 팀들이 맞대결을 펼친 1974 FIFA World Cup Germany™결승전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사실 네덜란드는 의문의 여지없이 당대 최고의 팀이었고, 축구사 전체를 논할 적에도 1970 FIFA World Cup Mexico™ '펠레와 친구들'의 브라질, 1954 FIFA World Cup Swizerland™ 푸스카스의 헝가리 등과 함께 최고의 반열로 손꼽을만한 팀이다.
 
하지만 "어느 팀이 실제로 더 나은 팀이었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 축구가 항상 그렇듯이 - 결승전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전술적 성공을 거두었던 팀은 서독이었다. 이전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는 빛나는 스타트를 끊었다. 킥오프되자마자 네덜란드는 15차례의 패스를 주고받았고 결국 클라이프의 돌파 장면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내 득점에 성공할 때까지 서독은 단 한 차례도 볼을 만져보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전, 서독의 베르티 포그츠가 크라이프에 대한 대인방어에 성공하면서 경기의 흐름은 바뀌었다. 베켄바워와 울리 회네스, 볼프강 오버라트가 미드필드 장악에 성공했고 서독은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북적대는 중원
미드필드를 두텁게 하기 위해 등장한 3-4-3 포메이션(좌)과 3-5-2 포메이션(우)
미드필드를 두텁게 하기 위해 등장한 3-4-3 포메이션(좌)과 3-5-2 포메이션(우)

시간이 흐를수록 승부의 열쇠가 '미드필드'에 존재한다는 관념이 팽배해지면서 미드필드에서 선수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는 점점 줄어들어왔다. 3-4-3, 3-5-2와 같은 포메이션이 유행을 타게 된 모티브 또한 미드필드를 두텁게 하고자 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와중에 수비와 공격의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창조성 풍부한 미드필드를 운영했던 프랑스가 주목을 받았다. 1982 FIFA World Cup Spain™, 1984 유럽선수권, 1986 FIFA World Cup Mexico™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강호로 군림했던 프랑스는 수비라인을 보호하는 강인한 루이스 페르난데스, 측면에서 공수를 넘나드는 쟝 티가나, 탁월한 개인 전술의 알랭 지레스, 최종 공격수 못지않은 득점력을 과시한 사령관 미셸 플라티니로 구성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미드필드 4중주'를 자랑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1986 FIFA World Cup Mexico™에서 아르헨티나는 미드필드를 투텁게 하며 강인한 수비에 무게중심을 뒀음에도, 한 위대한 천재의 공격 재능을 장착함으로써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어쩌면 마라도나는 '1인의 영향력'으로 FIFA World Cup™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마지막 수퍼맨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라도나와 같은 천재의 존재는 그렇지 않아도 강화되는 추세였던 미드필드 '압박'을 더욱 강조하게끔 하는 요인이 됐고, 이제 장거리 드리블과 같은 '원맨쇼'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90년대가 진행되면서 '미드필드 전투'는 더욱더 점입가경의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제 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서너 명의 선수들이 에워싸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게 됐으며, 이러한 수비의 의무는 최전방 공격수에게도 부여됐다. 공세 시에든 수세 시에든 언제나 수적 우위를 가져가고자 하는 정신은 최전방과 최후방 사이의 간격을 극도로 좁혀 놨다. 결국 이 '간격 유지'를 꾸준히 지속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승부의 중요한 갈림길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화두
그러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축구 전술의 특징적 국면들은 무엇일까?

(1) 속도(pace), 움직임(movement), 패스(pass)
선수들의 운동 능력은 물론, 장비나 용품에 이르는 모든 부문이 옛날보다 강력해진 현대 축구지만, 옛 시절 전술의 '기본 정신'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요한 크라이프가 선도했던 '토탈 풋볼'의 정신과 스타일은 요즈음에 이르기까지 명백하게 깃들어 있는데, 현대 축구의 근간을 형성하는 '속도', '움직임', '패스'야말로 현대판 토탈 풋볼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 요소들 이외의 다름 아닌 까닭이다.

주고받고, 효율적인 공간을 찾아들어가며, 동료가 이동한 공간적 공백을 메우는 끊임없는 유기적 플레이는 이전 시대보다 더욱 빨라진 토탈 풋볼 그 자체다. 그리고 어쩌면 아르센 벵거의 클럽 아스날이야말로 크라이프 토탈 풋볼의 '최고의 계승자'라 할만하다.

(2) 수비형 미드필더(defensive midfielder)
밀고 올라오는 수비 라인, 동료 미드필더의 빈 공간을 메우는 공격수의 움직임은 공수 간격을 극도로 좁혀 놨다. 이렇게 타이트한 수비가 일어나는 현대 축구에서 수비 라인을 보호하며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는 실로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압박'의 중심인 동시에, '탈압박'의 시발점이기도 한 까닭이다.

2006 FIFA World Cup Germany™에서도 이는 잘 증명됐다. 지난해 2006 FIFA World Cup Germany™에서 준결승에 도달했던 모든 팀들은 조화로운 수비형 미드필드 구축에 성공함으로써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우승국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피를로와 제나로 가투소, 준우승국 프랑스의 클로드 마켈렐레와 파트릭 비에이라, 독일의 토어스텐 프링스와 미하엘 발락, 포르투칼의 코스티냐와 마니셰가 모두 이 범주에 해당한다.
 
이 팀들은 공히 '포백 라인의 든든한 수호자이면서 공격 전개 능력 또한 갖춘' 미드필드를 장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피를로는 팀이 창조해낸 상당수의 득점 기회에 관여하며 기염을 토했다.


(3) 역습(counter=attack)
현대 축구에는 펠레나 조지 베스트 시절과 같은 낭만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특히 단기전 성격의 토너먼트에선 실점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따라서 거의 모든 팀들이 수세로부터의 빠른 역습 시도를 노린다. 물론 이것은 압박 상태로부터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가하는 '탈압박'의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한다.

효과적인 역습 전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역시 빠르고 정확한 패스 능력과 페이스를 지닌 선수들의 존재가 필수다. 또한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내주기 위해서는 시야와 지능을 갖추어야 한다. '물리적 스피드'뿐 아니라 '정신적 스피드'가 빠른 선수가 요구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역습을 제대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결정력 높은 공격수가 절실히 필요하다. 양 팀 공격수들의 마무리 솜씨의 수준차는 종종 승부를 가르는 원인으로 대두되곤 한다.

(4) 융통성(flexibility)
현대로 올수록 전술적 판단을 내리는 감독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요즈음의 감독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성향과 능력, 상대 팀의 전술과 특성, 경기 중 급변하는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어야만 한다.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에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 2004 유럽선수권 그리스의 깜짝 우승을 이끌어낸 오토 레하겔, 2006 FIFA World Cup Germany™에서 이탈리아에 우승컵을 안긴 마르첼로 리피 등은 이러한 좋은 사례들이다.


많은 정보들이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각 팀의 전통적 플레이 스타일의 경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대 축구에서 '전술적 경직성'에 매몰되어 있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한 준 희(KBS 해설위원/풋볼위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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