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오후 5시가 되면 홍대 앞 놀이터에는 콘트라베이스, 멜로디언, 캐스터네츠, 기타 등 각종 타악기를 든 청년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바로 2년 전부터 그곳에서 꾸준히 거리 공연 중인 '어쿠스트릿'. '어쿠스틱'한 음악을 '거리'에서 공연한다는 뜻의 이 그룹은 어느덧 고정 팬들까지 확보한 실력 있는 거리의 악사들이다.

거리의 쥬크박스 '어쿠스트릿'
연주뿐 아니라 노래도 맛깔 나게 할 줄 아는 유쾌한 20대의 청년들
홍대 앞 어쿠스틱 음악의 전령사, 어쿠스트릿
요즘 대중들은 각종 매체를 통해 높은 수준의 문화를 공급받는다. 당연히 음악도 그 중 하나. 양질의 음악을 클릭 한번으로, 리모컨 하나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괜찮은 음악'에 목말라하고, 미처 들어보지 못한 숨은 곳의 음악을 듣길 원하는 게 요즘 대중들이다. '어쿠스트릿'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좋은 음악을 직접 연주해 들려 주고 싶어하는 그룹이다.

(최지훈) "저희는 대중들이 쉽게 들을 수 없지만, 찾아서 들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음악들을 알려주려고 나선 거리의 '쥬크박스'에요.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음악을 우리만의 소리로 선보이고 싶었을 뿐이죠." 원래 '어쿠스트릿'이란 이름 앞에는 '생(生)소리 경음악단'이라는 부제가 붙었었다.
 
그러나 자꾸 공연 중에 노래를 부르게 돼서 '경'을 뺀 '생(生)소리 음악단'으로 바꿨단다. 연주뿐 아니라 노래도 맛깔 나게 할 줄 아는 유쾌한 20대의 청년들. 그들은 이름 그대로 '자연스러움'의 멋을 가졌다.


어쿠스트릿의 '과거'
지금껏 모르기 때문에 음악을 '못'듣고 있는 대중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홍대 앞 어쿠스틱 음악의 전령사, 어쿠스트릿
지금의 모습은 '어쿠스트릿 시즌 2'다. 2005년 초반까지만 해도 현재 멜로디언을 맡고 있는 '최지훈'과 예전에 베이스를 담당했던 '양현모' 이렇게 두 명이 초기 멤버였다. 이 둘은 함께 재즈 아카데미를 다녔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과도기를 거치면서 양현모가 빠지고 나머지 3명이 차례로 합류했다. 콘트라베이스, 기타 그리고 타악기까지. 2명에서 3명으로 3명에서 4명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렇게 약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들쭉날쭉했던 과도기가 끝나고 2005년 12월부터는 본격적인 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쿠스트릿'만의 색깔이 담긴 노래가 있는 것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음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용기와 열정만이 가득했을 뿐.
 
(최지훈) "2005년 홍대에 놀러 왔는데 한 노래방 앞에서 누군가 가면을 쓰고 반도네온(아코디언의 일종)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똑같은 탱고 레퍼토리를 오랫동안 반복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주를 구경하더라고요.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가요만 정서에 맞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 걸 알았어요.
 
다양한 음악을 공급받을 곳이 없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못 듣는다는 걸 깨달았죠. 나중에 안 사실인데, 가면을 쓴 사람이 가수 하림 씨더라고요. 저희가 닮고 싶은 가수도 바로 하림 씨에요."


그 순간 그들은 지금껏 모르기 때문에 음악을 '못' 듣고 있는 대중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어쿠스트릿'은 지금까지 2년 간 홍대 앞, 대학로에서 열린 '프린지 페스티벌' 등 문화 공간을 돌아다니며 꾸준히 공연해 왔다.


어쿠스트릿의 '현재'
정기적으로 공연을 보러 오는 팬들까지 생길 만큼 그들의 연주와 노래는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멍하니 있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홍대 앞 어쿠스틱 음악의 전령사, 어쿠스트릿
그들은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연습한다. 일주일 동안 각자 연주하고 싶은 곡들을 생각해 온 뒤 공연 레퍼토리를 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선곡하는 과정이 연습에 포함된다. 그렇게 해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곡은 총 7~8곡. 그 중에는 그들이 직접 만든 노래들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자신들만의 '자작곡'을 만들 수 있는 그룹이 된 것이다. 책을 통해 얻은 감정과 느낌을 담아 낸 '책 읽는 노래(오영광 작·곡)', 오후라는 시간이 가진 치유의 힘을 노래한 '오후의 기적(오영광 작·곡)', 연애치인 본인이 사랑에 빠졌을 때 느낀 달콤함을 담은 '마법(최지훈 작·곡)', 첫 공연에 대한 떨림과 기대감을 쓴 '설레임(최재혁 작·곡)'.
 
그들은 쑥스러워하며 각자의 노래를 소개했지만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차있었다. 끝없는 음악과의 소통에서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일까?
 
(최재혁) "사실 작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말씀 드린 4곡은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죠. 멤버들 모두가 엄격하게 심사해서 추려낸 곡들이거든요."


자작곡까지 생긴 지금에 이를 동안, 그들에겐 팬이 생겼고 웃지 못할 여러 에피소드들도 쌓였다. 기타에 연결하는 엠프의 건전지가 다 떨어져 공연 중간에 슈퍼까지 달려갔다온 '건전지 굴욕'사건부터 멋진 공연에 감사하다며 식사를 대접받는 일까지... 이제 그들은 홍대 놀이터의 '스타'다.


(오영광) "아직까지 이렇다 할 골수팬은 없지만, 기억에 남는 분은 많아요. 즉석에서 공연 모습을 그려주시는 분, 거의 매번 오셔서 노래 불러달라고 공연을 끊어버리시는 고집 세신 할아버님도 계시고요. 모두 너무 감사하죠." 정기적으로 공연을 보러 오는 팬들까지 생길 만큼 그들의 연주와 노래는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멍하니 있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요즘 유행하는 '소몰이 창법'처럼 화려한 꾸밈은 없지만 솔직 담백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점이 가장 큰 인기몰이의 포인트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도 서로 닮은 모습이 비쳐지니 마치 천생연분 같다.
홍대 앞 어쿠스틱 음악의 전령사, 어쿠스트릿
콘트라베이스를 맡은 오영광은 음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어쿠스트릿'의 한 멤버인 것이 기쁘단다.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한 건 작년이지만, 음표 하나하나가 굵은 음선을 그리는 악기의 매력에 지금도 푹 빠져있다고.

(오영광) "느리면서도 한음 한음에 힘이 들어가있는 게 콘트라베이스에요. 무엇보다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다른 사람의 연주를 돋보이게 해준다는 점이 제 인생철학과 닮아있어 너무 좋죠." 구슬픈 음색을 멜로디언으로 승화시키는 최지훈은 원래 기타리스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욕심이 생겨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고 다른 악기들처럼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고민 하던 차에 멜로디언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최지훈) "3년 전, 집이 이사를 하는 도중에 멜로디언을 찾았어요. 그냥 한번 불어봤는데 재즈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때부터 멜로디언을 열심히 '쳐 불고' 있어요. 하하."
큰 소리로 따라 웃었지만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멜로디언은 치기도 하고 불기도 하니까 '쳐 부는' 악기다. 그때 최지훈의 집이 이사를 하지 않았다면 독특한 멜로디언 음색이 돋보이는 지금, 어쿠스트릿 모습은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연하면서 타악기 2개를 동시에 소화하는 멤버 고태우는 '악기는 2개지만 소리는 하나'라며 악기 2개를 소화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단다.

(고태우) "타악기에는 멜로디가 없지만 '꽝'소리의 나열이 있어요. 음계가 있는 게 아니라서 소리 자체를 듣게 되죠. 무작정 막 치면 소음이 되고 배열을 하면 음악이 돼요. 원초적인 악기죠."
그는 밴드 활동을 할 때도 소심한 성격 탓에 가장 뒤에 있는 드럼이 속 편했다며 솔직한 말을 덧붙였다. 과감한 드럼과 소심한 그. 왠지 더욱 잘 어울린다.

'어쿠스틱 사운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악기가 바로 '통 기타'다. 교외의 라이브카페에서 들을 수 있는 빛 바랜듯한 이미지의 통기타. 기타리스트인 최재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기타에 대한 이미지도 있고, 또 그룹 특성도 있어 코드적인 부분은 주로 제가 담당해요. 피아노의 몫을 기타가 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어떻게 하면 지훈 씨의 솔로를 더 잘 서포트 할 수 있나'를 계속 생각해보게 돼요"라며 전체적인 사운드의 조화를 강조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남의 연주에 더 귀 기울인다는 그들의 말이 멋지다. 연주뿐 아니라 멤버들 간의 우정도 어느덧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할 만큼 자랐나 보다.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도 서로 닮은 모습이 비쳐지니 마치 천생연분 같다.

어쿠스트릿의 '미래'
용기 하나로 뭉친 이들이 하루 빨리 더 많은 대중 앞에 서는 날을 기대해 본다.
홍대 앞 어쿠스틱 음악의 전령사, 어쿠스트릿
존경하고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는 말에 다같이 '스티비 원더'를 꼽는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공연엔 항상 '스티비 원더'의 곡이 들어간다. 존경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소리로 공연하는 건 꿈같은 일일 것 같다.대중들은 어쩌면 밑바탕 없이 그저 더욱 멋진 공연에만 목말라하고, 유명한 외국 가수들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쿠스트릿의 말대로 '안'듣는 게 아니라 '못'듣고 있는 것일지도. 조금만 돌아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곳에 무엇보다 진실된 음악이 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고태우)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고, 음악과 친해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최지훈) "당연히 유명해지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죠. 그런데 그건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용기 하나로 뭉친 이들이 하루 빨리 더 많은 대중 앞에 서는 날을 기대해 본다. 반짝이는 마음 속 열정을 꾸준히 다듬어 사람들에게 '스티비 원더' 같은 음악인으로 남아 주기를...

소니, 스타일을 말하다 www.stylezineblog.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