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해설위원의 축구 이야기
역대 월드컵 명경기, 명승부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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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한.일 월드컵

아이리시 투혼에 긴장했던 무적함대
아이리시 투혼에 긴장했던 무적함대

언제나 호화멤버, 우승후보르 일컬어짐에도 국가대항전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드러내온 '무적함대' 스페인. 전통적으로 스페인은 잉글랜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성과가 미흡한 -능력에 비해- 양강(?)으로 꼽힌다. 빛나는 자국 리그들인 스페인 라 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쉽의 전통적 성과와 비교할 때 그 미흡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2002 FIFA 한.일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조별리그 3전3승을 거두며 이러한 징크스 탈출의 좋은 조짐을 드러냈으나, 16강에서 부딪힌 상대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유럽 지역 예선에서 강호 네덜란드를 울리며 본선 무대 진출에 성공했던 아일랜드가 스페인을 괴롭힌 주인공. '아일랜드가 보유한 유일한 월드클래스 선수'로 간주됐던 로이 킨의 대표팀 이탈에도 불고, 아일랜드의 선전은 본선 무대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스페인에0-1로 끌려가던 아일랜드는 종료 직전 노장 나이얼 퀸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로이 킨이 성공시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결국 승부는 승부차기로 가려지게 됐고 믿었던 매트 홀랜드, 케빈 킬반 등이 실축을 거듭한 아일랜드는 스페인의 실축에도 불고, 결국 승부차기 2-3으로 패배한다.

경기는 패했지만 데이미언 더프의 뛰어난 활약과 아일랜드 팀 전체의 투혼이 더욱 빛났던 명승부였다. 더불어 스페인의 우승 가능성에는 다시금 의문 부호가 던져지게 됐다.



1994 FIFA 미국 월드컵

오렌지가 다시 한번 실패하다
오렌지가 다시 한번 실패하다

대한민국 축구팬에게 잘 알려진 딕 아드보카트가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의 지휘봉을 잡고 임했던 1994 FIFA 미국월드컵. 1970년의 영광 이래 트로피를 들지 못한 브라질과 유럽의 호화군단 네널란드가 준준결승에서 만났다. 당대 최고의 선수들로 꼽힐만한 마르코 반 바스텐이 애석한 부상으로 참여할 수 없었고 루드 훌리트가 아드보카트와의 불화로 월드컵 직전 팀을 떠났지만, 그래도 네덜란드는 그들의 매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반 바스텐, 훌리트의 친구들인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로날드 쿠만이 대표팀에 건재했으며, 지역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경악케 했던 재능 데니스 베르캄프는 이제는 '중천에 뜬 해'였다. 여기에 브라이언 로이, 로널드 데보어, 마크 오베르마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도 가세한 상황. 네덜란드 최초의 국가대항전 우승인 1988 유럽 선수권 우승을 거머쥔 이래 1992 유럽선수권에서도 우승에 근접했던 -준결승에서 피터 슈마이켈이 골문을 지킨 덴마크에 고배- 네덜란드는 이번에야말로 FIFA 월드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대 가장 유럽 스타일에 가까운 삼바군단'이란 평가를 받을만한 브라질의 승리. 이 월드컵을 빛낸 '쌍포' 호마리우(52분)와 베베토(62분)의 골로 앞서가던 브라질은 베르캄프(64분)와 아론 빈터(76분)에게 실점하며 순식간에 추격을 허용했으나 브랑코가 터뜨린 기억에 남을만한 프리킥 골(81분)에 의해 승리를 낚았다. 이 경기 또 하나의 백미는 경기 직전 셋째 아이를 얻었던 아빠 베베토의 저 유명한 '아기 어르기'셀리브레이션. 경기에 패배한 후 아드보카트는 포지션 문제로 팀을 이탈했던 재능 훌리트의 공백을 조금은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마라도나의, 마라도나에 의한, 마라도나를 위한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답은 '마라도나'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라는 한 명의 선수는 이 월드컵 전체와 맞먹는다 해도 과언이 이닌 까닭이다.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은 사실상 천재와 슈퍼스타들의 잔치였다. 브라질에는 지코, 우루과이에는 엔조 프란세스콜리가 있었으며, 몇년에 걸쳐 '유럽 최고의 선수' 지위를 독점했던 미셸 플라티니가 프랑스를 이끌었다. 덴마크의 미카엘 라우드러븐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그의 천재성을 이 무대를 통해 만천하에 증명했고, 서독의 칼-하인츠 루메니게가 여전히 거물급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보여줬으며, 스페인에는 독수리 같은 골잡이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잉글랜드의 중원에는 패스의 귀재 글렌 호들이 존재했다. 개최국 멕시코는 어떠했나? 멕시코는 전 국민의 연호를 받는 국제적인 스트라이커 우고 산체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다른 스타들의 '총합'조차 적어도 이 월드컵에 있어서만은 디에고 마라도나 단 한 명에 비한다면 '지극히 작은'크기에 불과하다. 이 대단한 사나이의 모든 것을 잘 보여준 경기는 유명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숙명의 준준결승이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논란의 골과 FIFA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멋진 골을 바로 몇 분 간격으로 터뜨렸다.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구장에서도 이어가고 싶었던 종가 잉글랜드는 개리 리네커가 한 골을 만회하면서 개인 득점상을 가져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978 FIFA 아르헨티나 월드컵

스코틀랜드의 최고의 골이 터지다
스코틀랜드의 최고의 골이 터지다

2008 유럽선수권 예선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견지에서 요즈음의 스코틀랜드 축구는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케니 달글리쉬를 위시해 7.80년대 유럽 정상의 클럽 리버풀의 주축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절만 해도 어느 팀인들 스코틀랜드를 만만히 보기란 어려웠다. 이후 고든 스트라칸, 개리 맥칼리스터, 존 콜린스 등의 재능들이 스코들랜드를 지탱했지만, 21세기가 열리면서 어느덧 스코틀랜드 축구에는 이른바 재능의 명맥이 끊어진 상태. 따라서 지금의 스코틀랜드 축구팬들에겐 1978 FIFA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의 한 경기가 두고두고 뇌리에 남을 듯하다. 1978 FIFA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프란츠 베켄바워(독일)와 요한 크라이프(네덜란드), 파울 브라이트너(독일)가 불참한 상태로 치러지게 됐지만 그래도 요한 네스켄스(네덜란드), 칼-하인츠 루메니게(독일), 파올로 로시(이탈리아), 마리오 켐페스(아르헨티나), 테오필로 쿠비야스(페루), 그리고 케니 달글리쉬와 같은 스타들로 차 있었다.


자국 축구사를 통틀어 첫째, 둘째를 다투는 재능 달글리쉬를 앞세운 스코틀랜드는 D조 경기에서 크라이프 없이도 강호임에 틀림없는 '토탈풋볼'의 네덜란드와 대결하게 됐고, 이는 기억에 남을만한 경기가 됐다. 스코틀랜드는 네덜란드의 간판 골잡이 롭 렌젠브링크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달글리쉬의 골과 아치 게밀이ㅡ 페널티킥을 묶어 역전에 성공한다. 그리고 68분경, 스코틀랜드의 축구사에 길이 남을 게밀의 예술적인 골이 터져 나왔다. 네덜란드 페널티박스 측면 외곽 부근에서 볼을 잡은 게밀은 빔 얀센, 루드 크롤, 얀 포트블리에트를 모두 제쳐내고 우아하고도 절묘한 칩샷으로 키퍼를 농락했다. 네덜란드는 조니 렙이 한 골을 따라붙었지만 경기는 3-2 스코틀랜드의 승리였다.



1970 FIFA 멕시코 월드컵

연장전에서만 다섯 골
연장전에서만 다섯 골

1970 FIFA 멕시코 월드컵은 축구사 전체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팀'을 배출했던 기념비적인 월드컵이라 할만하다. 물론 그 주인공은 브라질이다. 펠레, 자이르지뉴, 리벨리노, 토스탕, 제르손, 카를로스 알베르토 등이 포진했던 당대의 브라질은 푸스카스의 헝가리, 프라이프의 네덜란드,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 아리고 사키의 AC밀란 등을 제치고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곤 한다. 이 최고의 팀은 전 대회 우승팀 잉글랜드를 상대로 거둔 아주 약간의 어려운 승리(1-0)를 제외하곤 이 대회 모든 경기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조차 브라질에겐 문제가 아니었다.(4-1 승).

이 모든 사실에도 불고, 대회 최고의 명승부이자 FIFA 월드컵 전체를 통해서도 최고의 경기로 꼽힐만한 경기는 브라질이 아닌 준우승국 이탈리아이 몫이었다. 준결승전 이탈리아의 상대는 준준결승에서 잉글랜드의 방심을 틈타 대역전승을 거머쥐었던 독일. 이탈리아는 로베르토 보닌세냐의 골로 종료 직전까지 앞서갔지만 92분에 허용한 동점골로 인해 경기는 연장에 돌입했다. 그리고 연장전에서 먼저 골을 터뜨린 쪽은 게르트 뮐러의 서독이었다. 잉글랜드 전에 이어 독일의 또 한 차례의 대역전극의 꿈이 피어오르는 순간, 바로 3분 후 이탈리아는 동점에 성공한다. 이번에는 이탈리아가 다시 앞서갈 차례. 루이지 리바의 골라 이탈리아가 3-2의 리드를 잡자 다시 한번 레르트 뮐러가 응수했다. 하지만 111분에 이르러 터진 이탈리아의 재능 지아니 리베라의 골이 이 드라마의 마지막이었다. 연장저에서만 무려 다섯 골이 터져 나온 경기는 결국 이탈리아의 4-3 승리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62 FIFA 칠레 월드컵

감격의 칠레, 최강 앞에 무릎 꿇다
감격의 칠레, 최강 앞에 무릎 꿇다

1962 FIFA 칠레 월드컵이 벌어지기 2년 전, 칠레에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여건이 좋지 않은 칠레로선 정말 천신만고 끝에 개최에 성공한 월드컵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칠레 국민들이 겪어왔던 모든 어려움은 놀랍게도 칠레가 준준결승에서 러시아를 물리치고 대망의 준결승에 진출하자 씻은 듯 치유되었을지도 모른다. 칠레 국민들은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비바 칠레"를 외쳤고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칠레의 대통령이 준결승 관전을 위해 모든 공식 행사를 취소한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준결승에서 칠레가 만난 상대는 '최강'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이번 월드컵에 가린샤, 디디, 바바, 자갈로를 비롯, 1958 FIFA 스웨덴 월드컵 우승 멤버들을 대거 참여시켰지만 눈에 띄는 한 명의 추가가 있다면 아마릴도였다. 이것은 현명한 결정이었음이 증명됐는데, '축구황제' 펠레가 두 번째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부터 부상 상태로 돌입하게 된 까닭이다. 경험이 일천한 아마릴도는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브라질을 구해내며 브라질이 지닌 선수층의 두께를 실감케 했다.

6월 13일, 7만 6천여 관중이 운집한 나시오날 스테이디엄에서 칠레와 브라질의 준결승이 펼쳐졌다. 준준결승에서 잉글랜드를 농락했던 바 있는 가린샤가 먼저 두 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의 위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칠레도 토로가 한 골을 만회하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바의 득점포가 불을 뿜었다. 바바의 골로 두 골 차를 회복한 브라질은 '칠레 축구의 영웅' 레오넬 산체스에게 페널티킥으로 실점, 다시금 추격을 허용했지만 바바가 한 골을 추가, 결국 4-2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나친 그라운드 폭력으로 크게 얼룩졌던 대화답게 이 경기에서도 양 팀 각각 한 명씩의 퇴장(브라질의 가린샤, 칠레의 란다)이 발생했지만, 칠레 관중들은 실력에 의한 결승 진출 실패를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른바 '가린샤 클럽'이라는 속칭도 바로 이 때 생겨났다.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

최고의 팀의 최고의 경기는 결승전이 아니다
최고의 팀의 최고의 경기는 결승전이 아니다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은 대한민국에겐 잊을 수 없는 월드컵이다. 당대 최강의 팀 헝가리에 0-9, 터키에게도 0-7로 패하면서 국제 수준과의 차이를 실감하기는 했더라도, 전쟁의 참회를 겪은 한국이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쾌거를 이룬 대회다. 한국에 아홉 골을 퍼부었던 헝가리는 당대 최강을 넘어 축구사 최고의 팀을 논할 경우 언제나 최정상에 경합할만한 한 마디로 '위대한 팀'이었다. 이 위대한 헝가리는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축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만한 일을 이미 해냈는데, 그것은 월드컵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자신들의 우월성을 믿어 의심치 않던 축구종가 잉글랜드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치욕을 제공한 것이었다. 1953년과 1954년, 약 6개월에 걸쳐 헝가리와 잉글랜드는 '누가 더 실제로 강한가'를 가리기 위한 매우 흥미로운 두 차례의 홈과 원정 대결을 펼쳤고, 결과는 헝가리의 완벽한 6-3, 7-1의 승리였다. 자존심 강한 잉글랜드인조차 이제 '헝가리 세계 최강론'에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사실 헝가리는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을 우승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축구의 역사가 그러하듯 -어쩌면 다소간 불공평하게도- 최고의 팀이 반드시 우승을 거머쥐는 것은 아니었고 이는 헝가리에겐 매우 애석한 일이었다. 남미의 도전자들은 브라질, 우루과이를 연거푸 4-2로 제압하고 결승에 오른 헝가리는 조별리그에서 8-3의 스코어로 압도했던 상대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 이번에는 '믿을 수 없는' 2-3의 역전패를 당한다. 오프사이드 판정과 패널티킥 판정 등 논란으 ㅣ여지가 남는 결과였으나 헝가리는 결국 FIFA 월드컵 우승국의 목록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월드컵 최고의 경기는 역시 헝가리의 몫이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헝가리와 전 대회 우승국 우루과이의 준결승은 스위스 로잔에 6만 관중을 운집시켰을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헝가리는 푸스카스의 결장 속에서도 우루과이에 2-0의 리드를 잡았으나 75분과 86분 오베르그에 연속골을 얻어맞고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연장전 막판, 헝가리의 또 다른 영웅 산도르 코치슈가 두 골을 작렬시키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미 두 차례 FIFA 드컵을 들어올렸던 우루과이에게 FIFA 월드컵 참가 사상 '첫 패배'를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1938 FIFA 프랑스 월드컵

선수 기용의 판단 미스가 대가를 치르다
선수 기용의 판단 미스가 대가를 치르다

1938 FIFA 프랑스 월드컵은 '세계 제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현실 속에서 치러졌다. 남미를 대표해 유일하게 참가했던 브라질은 이미 화려한 발재간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팀이었고, 우승을 향한 야심을 공공연히 피력했다. 믿을 수 없는 유연성으로 '고무 인간' 혹은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브라질의 레오디나스 다 실바가 발군이었다. 레오니다스는 요즈음의 축구에서도 그리 자주 볼 수는 없는 '바이시클 킥'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인물. 물론 레오디나스 본인이 그 기술의 창안의 공적을 다른 브라질 선수 페트로니뉴 데 브리토에게 돌리기는 하더라도, 그가 매우 이른 시기에 완성된 형태으 바이시클 킥을 선보였던 선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레오디나스의 가공할 득점력을 앞세운 브라질은 1라운드에서 다크호스 폴란드를 맞아 연장 접전 속에 6-5의 승리를 거뒀다. 이후 브라질은 준준결승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 1-1로 비긴 후 '재시함'까지 가는 혈투를 벌여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연이은 격전의 결과가 문제였다.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 아데마르 피멘타는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재시합 이틀 후에 벌어진 준결승에서 피로 누적이 염려되는 레오디나스를 쉬도록 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피멘타는 너무 일찍 '결승전'을 계산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는 레오디나스 없이 브라질이 쉽사리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고 결국 브라질은 대가를 치렀다. 55분 지노 콜라우시의 한 골로 앞서기 시작한 이탈리아는 그롭터 약 5분 후,간판 공격수 실비오 피올라가 얻어낸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페널티킥 상황에서 인터밀란의 전설 쥬세페 메아차가 하의가 내려가는 악조건을 극복하고 터뜨린 귀중한 골을 보태 승기를 잡았다. 브라질은 경기 말미에 로메오가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레오니다스는 스웨덴과의 3,4위전에 복귀해 두 골을 잡아냈지만, 그것은 이미 우승 꿈이 물거품이 된 이후였다. 이 경기는 다소간의 오만이 부른 전술적 판단 미스가 승부를 날려버린 사례로서 기억될 법하다.



1930 FIFA 우루과이 월드컵

최초의 영광은 우루과이 품에
최초의 영광은 우루과이 품에

1930년 7월 30일 수요일, 우루과이의 센테나리오 스테이디엄에서 축구의 역사가 새로 쓰여졌다. 월드컵의 효시인 1930 FIFA 우루과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개최국 우루과이와 인접 라이벌 아르헨티나가 격돌한 것이다. 이것은 FIFA 월드컵 역사의 첫 번째 결승전이었고, 이 한 가지 의미만으로도 이 경기가 명경기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 전부터의 긴장감은 상당했다. 이 월드컵이 있기 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1916년부터의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 결승전에서 무려 일곱 차례나 격돌했던 바 있는데 우루과이가 6연승을 거둔 끝에 1927년 처음으로 아르헨티나가 승리, 트로피를 쟁취했다. 초대 FIFA 월드컵 우승을 통해 우루과이는 남미 최강으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하고자 한 반면, 아르헨티나는 권력의 이동을 입증하고 싶어 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 대비, 경기장 주변에는 군대가 동원되어 삼엄한 경계에 나섰다. 경기 초반 우루과이의 파블로 도라도와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페우셀레가 골을 주고받으며 1-1 동점. 이러한 균형은 37분경 이 월드컵 최고의 성가를 올린 선수, 아르헨티나으 기예르모 스타빌레고 골 -오프사이드로 보이기는 했더라도- 을 터뜨리며 깨졌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리드는 여기까지. 후반전 들어 우루과이는 페드로 세아 , 산토스 이리아르테, 엑토르 카스트로가 연거푸 골을 작렬시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리아르테의 중거리포, 그리고 '한쪽 팔이 없는 불굴의 축구선수' 카스트로의 쐐기골로써 더욱 오래 기억될만한 FIFA 월드컵 첫 번째 결승전은 개최국 우루과이의 환호와 더불어 마무리됐다.

한 준 희(KBS 해설위원 / 풋볼위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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