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FIFA 독일 월드컵

독일이 역사상 두 번째, 통일된 독일로는 처음으로 개최한, 가장 최근에 열린 FIFA 월드컵 대회이다. 대한민국은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현재 세계를 빛내고 있는 슈퍼스타들이 조국을 위해 활약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그리고 포르투갈이 4강에 진출하며 유럽이 강세를 보였던 대회였고, 브라질은 프랑스에게, 아르헨티나는 승부차기 끝에 독일에게 패배하며 모두 8강에서 탈락하였다. 16강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와의 경기에서 큰 위기를 넘긴 이탈리아는 결승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며 먼저 유로2000 결승전에 대한 설욕을 하였고, FIFA 월드컵 통산 4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브라질을 추격하게 되었다.

'전설' 지네딘 지단은 본인의 선수 인생 마지막 경기가 FIFA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무한한 영광을 얻었지만 마르코 마테라치와의 충돌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고, '황제' 호나우두는 FIFA 월드컵 본선 통산 최다골의 신기록을 작성하였다. 이 두 선수의 모습을 FIFA 월드컵에서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은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역대 월드컵 명경기, 명승부2
독일은 FIFA 월드컵 역사상 승부차기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역사가 없다. 반면 이탈리아는 1994 FIFA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 로베르토 바조의 실축이 기억나듯이,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8강전에서 프랑스에 패했을 당시처럼, 승부차기에 그렇게 강한 팀이 아니다.(네덜란드도 비슷한 면모가 있다.)

2006년 7월 4일 도르트문트에서 FIFA 월드컵 3회 우승의 유럽의 쌍웅, 독일과 이탈리아가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다. 조직력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두 나라의 모습을 상징하듯이 타이트하고 물샐틈없는 수비망은 상대 공격수의 침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후반 모두 지나고 연장후반전도 14분쯤, 모든 사람은 승부차기를 생각하고, 개최국이며 승부차기에 절대강한 독일의 유리함을 생각하고 있던 시점에서 터진 아드레아 피를로의 절묘한 백패스와 파비오 그로소의 왼발 한 방 슈팅.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나고 말았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공격에 전원 가담한 독일의 빈틈을 노려 그 짧은 시간 한 골을 추가하고야 만다. 이로써 월드컵 4회 우승의 도전장은 이탈리아가 가져가고, 개최국 독일 전차군단의 행진은 3, 4위전으로 진로가 바뀌고 말았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결과를 확정한 선수 역시 파비오 그로소였다.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월드컵에 이어 FIFA 월드컵의 창시자격인 줄 리메의 고향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다. 개최국 프랑스는 '전설' 지네딘 지단을 앞세워 '황제' 호나우두가 버틴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을 결승에서 3:0으로 완파하며, 우루과이, 이탈리아, 독일, 브라질, 잉글랜드, 아르헨티나에 이어 일곱번째로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로 등록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우승 과정은 상당히 이채로운데, 순조롭게 조별리그를 통과직후 16강에서 만난 파라과이를 상대로 수비수 로랑 블랑의 월드컵 최초의 골든골로 신승을 거두었고, 이탈리아와의 8강 외나무다리 승부는 0:0 무승부 이후 루이지 디비아조의 마지막 실축에 힘입은 승부차기 승리였다.

이 대회 돌풍의 주인공 크로아티아를 상대한 준결승은 다보르 수케르에게 선제골을 내준 이후 예상치 못한 릴리앙 튀랑이 두 골을 터뜨리며 2:1로 간신히 승리하는데, 100경기가 훨씬 넘는 A매치 참가한 튀랑의 A매치 골 수는 아직도 "2"이다. 결승전에서는 지단의 헤딩 두 골과 마지막 역습을 통한 엠마뉴엘 프티의 확인골로 3:0 완승을 거두지만, 공격수의 득점 지원없이 우승을 차지한 재미있는 흐름이었다.
역대 월드컵 명경기, 명승부2
정치적으로 사이가 편하지 못한 축구의 강호, 스타들이 집결한 국가들이 16강에서 만났다. 6분과 10분, 각 국의 정신적 지주들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앨런 시어러가 대포알 같은 페널티킥을 주고 받으며 심상치 않은 신호를 보낸다.

16분, 아직도 마이클 오웬하면 떠오르는, 10대 소년 오웬의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에 이어진 '그 골'로 잉글랜드가 한 발 앞서나가지만, 전반 종료 직전 아르헨티나는 절묘한 프리킥 세트피스를 통해 하비에르 자네티가 기어이 동점을 만들어내었다. 후반 시작하고 얼마 뒤, 디에고 시메오네으 노련함에 당하며 그 유명한 데이비드 베컴이 퇴장을 당하고 만다.
                               
그래도 잉글랜드가 잘 버텨내며 2:2 스코어에서 연장전을 지나 승부차기까지 이르렀고, 두 번째 키커들인 에르난 크레스포와 폴 잉스가 실축하며 승부차기 3:3의 상황에서, 마지막 다섯번째 키커가 등장하여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아얄라는 깨끗이 성공한 반면 잉글랜드의 노장 데이비드 배티의 발을 떠난 킥은 로아 골키퍼에 막히며 경기는 종료되었다.

 
그러나 패배 이후 모든 비난의 화살은 실축한 데이비드 배티가 아닌, 퇴장을 당한 데이비드 베컴에게 돌아갔다. 축구와 FIFA 월드컵의 역사에 길이 남을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1990 FIFA 이탈리아 월드컵
펠레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시대이다.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을 차지한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를 앞세워 두 대회 연속 제패의 시동을 걸지만, 불안한 출발을 보여주게 된다. 저력을 발휘하며 또 한 번 결승에 올라 만난 상대가 독일. 4년 전 1986 FIFA 월드컵의 결승전과 동일한 매치업이 나오게 되었다.

4년 전 부루차가의 종료 직전 결승골에 눈물을 흘린 독일이 이번에는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페널티킥 고을 잘 지켜내며 설욕에 성공한다. 이로써 독일도 세 번째 우승을 기록하였다. 코스타리카와 UAE이 FIFA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미국이 50년만에 FIFA 월드컵에 돌아오기도 한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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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밀라노의 아름다운 경기장 주세페 메아차(또는 산 시로)에서 1990년 6월 8일 열린 1990 FIFA 이탈리아 월드컵의 개막전, 주인공은 전 대회 우승 아르헨티나와 이제 FIFA 월드컵 본선에 두 번째 나온 아프리카의 카메룬이다.
        
위에도 말했듯이 아르헨티나에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었고, 61분에는 카메룬의 카나 비크가 퇴장을 당한다. 마라도나와 아벨 발보, 부라차가 등 슈퍼스타에다 후반 시작하면서 투입한 클라우디오 카니자까지 공격을 전개하지만 카메룬의 골문은 열리지 않고, 오히려 10명의 카메룬이 67분에 터진 프랑수아 오맘 비크의 골로 앞서 나간다.


87분에는 마싱까지 퇴장당하며 9명만이 남은 카메룬은, 그러나 끝까지 무실점으로 아르헨티나의 공세를 막아내며, FIFA 월드컵 역사에 남을 이변을 기록한다. 카메룬의 대통령은 이 날 임시공휴일을 선언하였다.


1982 FIFA 스페인 월드컵
열 두번째 FIFA 월드컵 대회는 스페인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지역예선에서 이변이 발생하며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으로, 이전 두 대회에서 결승전에 진출한 네덜란드가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였고, 스웨덴 역시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북중미의 절대 강자 멕시코도 이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본선 진출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난 첫 번째 대회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더욱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다. 24개국은 6개조로 나뉘었고, 각 조의 2위까지 12개국이 3개국씩 네 개조로 나뉘어 2차리그가 진행되고, 2차 리그 각 조 1위 국가가 준결승전에 진출하여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4강 멤버가 전부 유럽으로 채워졌고,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독일을 3:1로 물리치며 1938년 이후 44년만에 FIFA 월드컵의 정상에 오른다. 브라질 이후 처음으로 3회 우승을 기록하였다.

역대 월드컵 명경기, 명승부2
2차 조별리그 3조의 구성은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어느 국가가 결승에 오르거나 우승을 차지해도 이상할 게 없는 국가들이 매치업을 펼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가 먼저 2패로 탈락을 하고 1승씩 기록한 이탈리아와 브라질이 4강 진출권을 놓고 한 판 승부를 겨루었다.
   
이탈리아는 각 포지션별로 최고의 선수가 고루 분포하였는데, 스트라이커 파올로 로시, 창의적인 미드필더 브루노 콘티, 강인한 수비수 클라우디오 젠틸레, 그리고 수문장 디노 조프까지 화려한 면면이다. 그에 대항하는 브라질은 지코와 소크라테스를 앞세우고 있었다.


1982년 7월 5일 바르셀로나 사리아 경기장에서 열린 경기, 8분만에 로시의 골로 이탈리아 앞서가지만 4분 후에 소크라테스의 골로 브라질이 반격한다. 다시 25분 로시가 골을 추가하고 한참 시간이 흐르는 상황, 후반 23분 브라질의 팔캉이 기어이 동점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다시 6분 후, 로시가 결승골을 터뜨리며 3:2, 흔히 말하는 펠레 스코어의 승리를 만끽하게 된다. 파올로 로시는 해트트릭, 이 기세를 몰아 이탈리아는 우승까지 차지하고 로시는 득점왕에 오른다.


1974 FIFA 독일 월드컵
줄 리메 컵이 아닌,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FIFA 월드컵 트로피가 처음으로 사용된 대회이다. 당시 서독에서 열린 대회에 동독이 참가한 의미 있는 대회이기도 한데 동독은 8강까지 진출하였고, 서독이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브라질이 1970년 FIFA 월드컵 우승을 기록하며 3회 우승으로 줄 리메 컵을 영구 보유하게 되면서 새로운 트로피가 도입이 되었다.

유럽 대륙에서 개최된 대회이니만큼 독일과 네덜란드, 폴란드와 같은 유럽 국가들이 강세를 보였고, 특히 요한 크루이프라는 천재가 활약한 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가 된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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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7월 7일 독일 뮌헨의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열린 결승전, 이제는 현재 축구팬들에게 친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독일의 스타팅 라인업에는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폭격기' 게르트 뮬러를 포함하여 베르디 포크츠, 파울 브라이트너, 율리 회네스 등이 포함되었고, 네덜란드 역시 요한 크루이프를 필두로 요한 네스켄스, 아리에 한, 루트 놀과 같은 이름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지도자와 행정가의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 시작 2분만에 네스켄스가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토털 풋볼'의 네덜란드가 앞서가지만, 25분 브라이트너가 역시 메널티킥으로 응수하고 43분 뮬러의 골로 앞서나간 서독이 스코어를 끝까지 유지하며 2:1로 승리, 1954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FIFA 월드컵의 정상에 서게 된다. 그리고 토털 풋볼의 세계 정복의 꿈은 일단 무산되지만 4년 후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선다.


1966 FIFA 잉글랜드 월드컵
FIFA 월드컵의 8회 대회는 잉글랜드에서 개최되었다. 아프리카 지역 예선 우승국은 플레이오프를 거쳐 본선에 진출하라는 방침에 거부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보이콧이 있기도 하였지만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고, 98,000여 관중이 지켜본 웸블리의 잉글랜드와 서독의 결승전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결승전 대결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박두익'과 '사다리 전술'로 널리 알려진 북한의 돌풍이 있던 것이 바로 이 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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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한 잉글랜드에 대한 미국의 승리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은 FIFA 월드컵 최대의 이변 가운데 하나인, D조 조별리그에서 박두익의 결승골로 이탈리아에게 믿기지 않는 1:0 승리를 거둔 북한은, 이탈리아를 조 3위로 탈락시킴과 동시에 소련에 이어 조2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된다.

1966년 7월 23일 에버튼 클럽의 홈구장인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북한의 8강전 경기는 북한이 패배하였기에 이탈리아에 대한 승리만한 이변은 아니었지만 전설적인 축구 선수 중 한명인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을 상대로 한 북한 선수들의 경기력은 실로 놀라웠다.

그렇지만 물론 이 경기는 포르투갈 축구 역사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대역전승이기도 하다. 경기 시작 55초만에 박승진이 골을 터뜨리며 기세를 올린 북한은 22분 이동운, 24분에 양승국이 연달아 포르투갈의 골망을 가르며 3: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전을 능가하는 이변이 연출되고 있었지만, 포르투갈의 영웅 에우제비오의 활약과 함께 북한의 꿈은 사라지게 된다.

27분부터 시작하여 페널티킥 두 개를 포함, 네 골을 에우제비오가 작렬하며 경기는 역전이 되었고, 79분 아우구스토의 쐐기골로 경기는 뒤집기 어려운 상황으로 흐르며 결국 5:3 포르투갈의 승리로 결정이 난다. 월드컵 역사상 명승부 랭킹을 정한다면 반드시 상위에 올려놓을 만한 명장면이다.


1958 FIFA 스웨덴 월드컵
'축구황제' 펠레의 화려한 월드컵 데뷔 무대가 된 대회이다. 18세의 펠레는 6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를 기록하였고, 특히 6골 중 5골을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터뜨리며 브라질 우승의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역사상 최초로 개최 대륙이 아닌 국가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2002 FIFA 한.일 월드컵, 한국과 일본 대회에서 브라질이 다시 기록할 만큼 쉽지 않은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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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폭풍을 몰아친 쥐스틴 퐁텐의 프랑스와 가린샤, 바바, 자갈로, 디디 그리고 펠레까지 화려한 공격의 면면을 구성한 브라질이 준결승에서 맞붙었다. 2분만에 바바가 선제골을 기록하며 브라질이 기세를 올리지만 바로 7분 후에 퐁텐이 자신의 대회 9호 득점인 동점골을 만들며 경기를 팽팽하게 만든다.

39분 디디가 한 골을 추가하며 2:1로 브라질이 앞서며 전반이 종료되었고, 후반전 시작과 함께 펠레의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후반 8분, 19분 그리고 31분 헤트트릭의 세 골을 몰아 넣으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ㄷ. 5:1로 브라질이 앞선 상황에서 프랑스가 한 골을 만회하였지만 이미 대세는 종료된 상황.

펠레는 개최국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두 골을 기록하며 5:2 승리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된다. 쥐스틴 퐁텐은 독일과의 3, 4위전에서 4골을 몰아넣으며 합계 13골로 대회를 마감한다. 퐁텐의 단일대회 13골의 기록은, 어쩌면 영원불멸할지도 모른다.


1950 FIFA 브라질 월드컵
2차 세계대전으로 12년간 열리지 못한 FIFA 월드컵이 재개되었다. 전쟁이 종료된 직후인 1946년에 브라질 개최가 결정되었고, 또한 FIFA를 탈퇴하였던 영국의 네 개 축구협회(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도 1946년에 재가입하면서 드디어 '축구종가'가 FIFA 월드컵 무대에 등장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16개국이 4개조로 나누어 각 조 1위가 다시 결승리그를 치르는 형태로, 개최국 브라질과 우루과이, 유럽의 스페인과 스웨덴이 4강 결승리그에 오르게 된다. 2승의 브라질과 1승 1무의 우루과이가 맞붙은 사실상의 결승전이면서 대회 마지막 경기, 리오 데 자네이로으 마라카낭 경기장의 200,000여 관중이 지켜본 홈팀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한 판 승부에서 우루과이가 예상 외의 2:1 승리를 거두며 두 번째로 줄 리메 컵을 들어올린다.
역대 월드컵 명경기, 명승부2
드디어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가 처음으로 월드컵에 등장한다.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되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된 잉글랜드였다. B조 조별리그에서 스페인과 칠레, 그리고 미국을 상대하게 된 잉글랜드는 첫 경기에서 칠레를 2:0으로 누르며 순조롭게 출발하였지만, 2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FIFA 월드컵의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고, 잉글랜드는 세계 최고이자 강력한 우승후부로, 아이티 출신의 미국인 조 개첸스의 한 골로 승부가 갈린 이 경기는 FIFA 월드컵 전체 역사를 고려할 때도 대단한 이변으로 간주되고 있다.

경기 종료 후 당시 언론사들이 미국의 1:0 승리를 잘못된 정보로 판단하며 잉글랜드의 1:0 승, 또는 잉글랜드의 10:0 승으로 기사를 작성했다는 후문이 이 이변의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1934 FIFA 이탈리아 월드컵
최초로 유럽 대륙에서 열린 월드컵으로 16개국이 참가하여 조별리그 없이 바로 토너먼트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남미, 북미 대륙에서 유럽으로 오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이는 선수들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에 대한 증명과도 같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회전에서 탈락하였고, 미국은 개막전에서 이탈리아에게 1:7로 대패하기도 하였다.

결국 이 대회의 4강은 모두 유럽 국가들의 각축으로 압축되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가 각각 결승전 티켓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참고로 4강이 모두 유럽국가로 채워진 것은 1966 FIFA 잉글랜드 월드컵(잉글랜드, 서독, 포르투갈, 소련), 1982 FIFA 스페인 월드컵(이탈리아, 서독, 폴란드, 프랑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06 FIFA 독일 월드컵(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포르투갈)까지 역사상 4회 기록이 남아있다. 남미 국가로 4강이 채워진 것은, 단 한 번도 없다.
역대 월드컵 명경기, 명승부2
2차 세계대전 이전이기에 '독일'의 이름으로 참가한 전차군단, 물론 이 당시에도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16강에서 벨기에, 8강에서 스웨덴을 물리치고 순조롭게 4강에 진출한 독일의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 1934년 6월 3일 로마에서 열린 이 경기는 독일의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올드리히 네예들리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3;1 승리를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리게 된다.

이후에도 세계적인 강호로 군림하게 되는 체코 축구 역사의 시발점이 되는 장면이었다. 참고로 네예들리의 두번째골은 그동안 루돌프 크르칠의 골로 기록되기도 하였지만 2006년 11월, FIFA가 공식적으로 네예들리의 골로 확인하였고, 이로 인해 네예들리는 이 경기의 헤트트릭과 합계 5골로 1934년 대회 단독 득점왕이 공인되었다.

정 효 웅 (MBC, ESPN 해설위원 / FIFA 공인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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